마흔과 쉰을 지나며
마흔과 쉰을 지나며, 예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고마워할 수 있도록
퇴근하고 집 앞에 도착했는데, 차에서 바로 내리지 못하는 날이 있다.
시동을 끄고 잠깐 앉아 있는다.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.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고, 일을 처리하고, 마음에 걸리는 말을 몇 번 삼켰더니 조금 지쳤을 뿐이다.
집에 들어가면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, 그 전에 잠깐 나 혼자 있고 싶어진다.
젊었을 때는 마흔이 넘고 쉰쯤 되면 사는 게 한결 수월해질 줄 알았다.
어느 정도 모아놓은 돈도 있고, 내 자리도 잡혀 있고, 사람 때문에 속상한 일도 줄어들 줄 알았다.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여전히 처음 겪는 일이 많다.
부모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끼는 일도,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일도,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지 계산해보는 일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.
겉으로는 제법 어른답게 살아가는데, 속으로는 여전히 묻고 있다.
‘나, 잘 살고 있는 걸까.’
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다.
아침이면 일어났고,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냈다. 사고 싶은 것을 내려놓은 적도 있고, 억울해도 형편을 생각하며 참은 적도 있다. 가족에게 필요한 돈은 아깝지 않다가도 내 옷 한 벌을 사려면 몇 번을 망설였다.
그런데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서운한 날이 있다.
친구의 좋은 소식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돌아와서도, 잠들기 전에는 내 삶을 슬쩍 비교하게 된다.
‘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빠듯할까.’
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는 않았으면 한다. 우리도 애쓴 만큼 조금 편안해지고 싶었던 것이다.
다만 그 서운함 속에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.
지금의 하루가 쌓여 예순의 내 생활이 될 테니까.
가끔 예순이 된 나를 떠올려본다.
그때의 나는 지금을 돌아보며 무슨 말을 할까.
돈을 더 모았어야 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. 몸을 조금 더 챙겼어야 했다고, 그 사람에게 먼저 연락할 걸 그랬다고 할지도 모르겠다.
어쩌면 가장 아쉬운 것은 이런 일일 수도 있다.
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않은 것.
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여 내 마음을 접어둔 것.
형편이 나아지면 웃겠다고, 걱정이 사라지면 즐기겠다고 미루기만 한 것.
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을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어진다.
예순이 되기 전까지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야겠다는 뜻은 아니다. 지금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.
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초부터 배워보고,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작게 시작해보는 것.
처음부터 잘할 필요는 없다. 남보다 느리면 조금 더 시간을 들이면 된다. 해보다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도, 적어도 궁금했던 마음은 풀릴 것이다.
“이 나이에 무슨.”
입버릇처럼 하던 그 말을 이제는 조금 줄여보려고 한다.
앞으로의 내가 오늘을 돌아보며 “그때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”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.
몸을 챙기는 일도 더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.
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식사를 대충 넘기고, 쉬는 날에는 지쳐서 누워만 있다가 저녁이 된 적이 있다면, 이번에는 가까운 길이라도 걸어보자. 무리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내 생활에서 이어갈 수 있는 일을 하나 고르면 좋겠다.
돈도 마찬가지다. 막연히 불안해하는 대신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들여다보고, 가능한 범위에서 조금씩 준비해보는 것이다.
걱정만 하던 일을 손에 잡히는 행동으로 옮기면, 적어도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있다.
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에게 너무 모진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.
열심히 살자는 다짐이 또 하나의 채찍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. 이미 지쳐 있는 날에는 쉬는 것도 필요하다. 오늘 충분히 쉬어야 내일 다시 해볼 마음이 생기는 날도 있다.
긍정적으로 살자는 말도 늘 웃고 지내자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.
속상한 날에는 속상하다고 말하고,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한숨도 쉬자. 다만 하루가 힘들었다고 해서 앞으로의 내 삶까지 모두 어둡게 단정하지는 말자.
“오늘은 마음대로 안 됐네. 내일은 여기부터 다시 해보자.”
그 정도의 말이면 충분한 날도 있다.
사람과의 시간도 조금 더 챙겼으면 한다.
생각나는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, 고마웠던 사람에게 고마웠다고 말하고, 가까운 사람과 밥을 먹을 때는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는 것.
늘 곁에 있어 익숙해진 사람에게 “요즘 힘든 건 없어?” 하고 물어보는 것.
나중에 시간이 넉넉해지면 하겠다고 미뤄두기에는, 오늘 함께 먹는 한 끼가 아깝다.
생각해보면 우리가 바라는 삶에는 그렇게 평범한 장면도 많다.
내 발로 걷고,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, 만나면 편안한 사람과 웃는 것. 해야 할 일이 있고, 가끔은 기대되는 약속이 있는 것.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도 나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.
그런 하루를 지금부터 조금씩 만들어가면 좋겠다.
예순이 되었을 때 후회가 하나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, 이런 말은 할 수 있었으면 한다.
“그때 걱정이 많았는데, 그래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네.”
“서툴러도 시작하길 잘했네.”
“바쁜 중에도 내 삶을 챙기려고 했구나.”
오늘 당장 모든 것을 바꿀 필요는 없다.
미뤄둔 일 하나를 해보고, 나를 깎아내리던 말 한마디를 줄이고, 저녁에는 잠깐 바깥바람을 쐬어보자.
예순의 내가 고마워할 오늘을,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가자.
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인정하면서, 앞으로의 날들도 기대하면서.
우리에게는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.
